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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방 - 사는 이야기

[그대사 #4.] 엄마란, 가장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자 가장 상처주는 사람
  • 꽃등심™ 학부모
  • 조회수 2,543
  • 좋아요 12
  • 2017-06-02
태그#대학생 #사생활 #송도 #연세대 #열심히한건도망가지않는다 #외고

 

새 정부 들어선 이후 비교적 우호적인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만, 교육은 어후~ 난립니다. 하긴, 단군할아버지가 나라를 연 이래 교육이 문제 아니었던 적이 있을까요? ‘홍익인간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기도 하다는데, 아무래도 홍익학생까지는 미치지 못하나 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말많고 탈많은 특목고 출신 학생입니다. 그간 특목고 아이들은 괴물이 아닐까 여겨졌던게 사실입니다. 드러나는 아이들은 정말 괴물스럽게 잘하는 아이들만 보였으니까요. 오늘의 주인공은, 글쎄요.. 어쩌면 우리 아이 같습니다. 열심히도 해보고, 좌절도 해보고, 사춘기도 찐~하게 겪어보고, 친구들은 마냥 좋은. 그런데 참 기특합니다. 힘들었던 경험에 무릎 꿇지 않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훨씬 더 큰 아이가 되었습니다.  

학교 밖 어른들이 아무리 흔들어대도, 학교 안 아이들은 그저 묵묵히 할 일 할 뿐입니다. 부디 어른들의 고민의 깊이가 이 아이들보다는 깊어서, 어른들이 보시기에 좋은 정책말고 아이들이 겪기에 좋은 정책이 만들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글 시작합니다.  

 

 

-본인은 어느 고등학교를 언제 졸업했나요? 어떤 전형을 통해 어느 대학, 학과를 언제 들어갔나요?

저는 2016년에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특기자 전형을 준비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만 현역 때 수시 합격에 실패했고, 수능 점수도 좋지 않아서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재수를 했고, 2017학년도 일반전형(정시)로 연세대학교 생활디자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고등 시절을 돌이켜 보면 가장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3 5월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학년 때의 내신이 최악이었던 터라 어느 전형을 준비해야 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나마 기타 스펙을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겨울방학 때 토플학원에 다녔습니다. 매일반에 다니면서, 다음날까지 해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양의 과제를 매일 해야 했습니다. 5월까지 총 두 번의 시험을 치렀고, 단기간에 점수를 바짝 올릴 수 있었습니다.

토플 시험을 치른 후 며칠 뒤 AP 시험이 두 개 있었고, 그 일주일 뒤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AP psychology Calculus를 치렀는데, 공부를 시작할 때 계산기를 빌렸던 친구가 해도 안 될 거 같은데 그냥 하나만 봐라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없긴 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꼭 둘 다 응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둘 다 만점을 받았고, 계산기를 돌려줄 때 결과를 들려주었습니다!!! 아핳핳

AP가 끝나고 바로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고, 하루에 인터넷 강의를 열 몇 개씩 들으며 무모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학년 때 한 번 떨어졌던 한능검 시험이었기에, 합격 결과를 확인했을 때 더 기뻤습니다.

무모했던 계획들이었지만, 그것들을 모두 다 해내고 난 뒤에 느꼈던 그 성취감 덕분에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빼곡히 채운 플래너와 쌓여가는 이면지들을 보면서 뭔가 진짜 공부를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 5월이 가장 잔인하면서도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이 납니다.”

 

-5월 안에 저게 다 가능한 스케줄인가요???

시험은 다 주말에 있었으니까 공부하는 것 빼고는 학교생활에 지장이 없었고, 외고 특성상 5월에 AP를 많이 보니까 선생님들도 배려를 해주셨어요.”

 

-고등의 추억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 이유는?

2학년 때 저는 반항기가 극에 달했고, 학교축제기간 동안 동아리 발표 연습량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크게 싸운 후 3때까지 1년 가까이 아버지와 말 한마디 섞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기에 당연히 공부도 손에 들어오지 않았고, 잡생각과 딴짓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보다 월등한 친구들 사이에서 제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졌습니다. 내신도 당연히 바닥을 쳤고, 급격하게 찌기 시작한 살 때문에 자신감도 낮아졌습니다. 뭔가 총체적 난국이었던 고 2때의 저는 그저 계획없이 주어지는 일을 하는 생활만을 반복했고, 그 어느 것 하나 얻지 못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우리학교 내신은 1~3등급 구간, 4등급, 5~6등급 구간 이렇게 나눠지는데요, 아무리 해도 선을 못 넘겠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른 친구들은 내가 한 걸 이미 반복하고 있었고, 그래서 해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동아리가 핑계가 된거죠.)”

 

-고등의 추억 중 그래도 그나마 가장 좋았던 것은? 그 이유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고등학교에서 제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친구들인 것 같습니다. 가장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삼 년 동안 서로 의지하면서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생 연락하며 지내기에 충분한 추억을 쌓은 것 같습니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제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 훌륭한 해결책을 선뜻 내줄 수 있는 학생들이었고, 지금에 와서도 어디서 만나든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중학교 땐 상상도 못했던 합주실 가기, 공연하기, 소논문 쓰기, 야자 째기, 공부하다 밤새기 등등 이 모든 것들을 같이 해준 친구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나에게 고등 친구들이란?

고등학교 시절 열등감의 원인도 다 친구들이었고, 재수 시작 때는 친구들보니 더 화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재수 시작하면서 모든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어버렸는데, 제가 끊으니까 친구들도 연락을 끊어줬어요. 방해가 되는 걸 아니까. 재수가 끝나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 연락이 오고, 재수 결과 발표 전엔 정말 많이 만나 놀았습니다. 진짜 감동이었어요. 잘되었을 때 진짜 축하해줄 줄도 알고

대학오니 고등때 누가 공부 잘했고 못했고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고등때 저희는, 설사 성적이 낮아도, 잘하는 학생들이다 서로 칭찬해주고 그랬습니다. 공부를 친구들 사이에 관여시키지를 않았어요.

 

-고등동안 우리 엄마는 나에게 어떻게 해주셨나요? 그것들 중 특별히 좋았던 것과 이건 진짜 싫었어 하는 점은?

고등학교 시절 엄마에게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저를 항상 차로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셨던 것입니다. 분명 당신도 일을 하는 상황이었고(대치동 학원 실장님이셨어요) 다른 할 일도 많았을 텐데 저 때문에 자신의 자유시간을 3년 동안 거의 없애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방학때 아침 일찍 학원에 갈 때, 밤늦게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돌아올 때, 엄마는 자신의 쉬는 시간을 제 수면 시간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사실 고등때는 이런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저 편하다, 좋다, 잘 수 있다 이런 생각만 했었죠. 다른 부모님도 다 이런 줄 알았으니까요.)

싫었던 점은 가끔 엄마랑 싸울 때 자존감을 낮추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지금은 심한 말을 들어도 많이 상처받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가장 위로 받고 싶은 사람한테 심한 말을 듣는 일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걸 엄마에게 이야기해보지 않았어요? 엄마는 알고 계셨나요?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2,3때 많이 힘들었지만 식구들에게 내 스트레스를 풀지 않았습니다. 식구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제 스트레스 해소법은 먹는 것과 노래방입니다. 빨리 까먹는 성격이라 효과가 있어요. 노래방은 고3때 제일 많이 갔습니다. 심지어 수능보기 직전에도 갔고 주말에는 혼자 가기도 했어요. 수능 20일 전에는 코엑스 게임방에 가기도 했습니다.”

 

-고등동안 우리 엄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솔직히 말해,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지만 재수를 하면서 느낀 것이, 저는 고등학교 3년동안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손에 꼽을 만큼인 것 같습니다. 공부보다도 동아리 활동이 먼저였고, 친구들과 노느라 혹은 잡생각을 하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착각했고, 몸도 마음도 힘들다고 계속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하는 만큼만 나오는 편이었기 때문에, 시험기간에 엄마가 열심히 하는 것 같네라고 말씀하시면 정말 좋은 결과가 나왔고, ‘너무 안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실 땐 저조한 성적을 받곤 했습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숙제나 수행평가 때문에 밤을 새는 딸이 안타까우셨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할까 하는 마음에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때문에 대학 입시도 걱정되셨을 것 같습니다.

dele라고 전공어 어학인증을 볼 때 어쩌다보니 진짜 공부 잘하는 어벤저스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단기간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 엄마는 정말 기분 좋아하셨고 기대치도 많이 올라갔어요, 그래서 고2때 엄마는 저에게, 왜 이러냐고, 뒷모습만 봐도 딴생각하는 것 알겠다고, 열심히 하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많이 답답해 하셨어요. (dele는 저희집에서, 제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 엄마는 dele할 때 같다!” 라고 그러세요.).

재수할 때는 특히 수학 걱정이 많았습니다. 보기에서 고르는 문제 같은 경우 개수를 제대로 맞췄는데도 3등급이 나오고 하니까 불안했어요. 3수 할까봐요. 그럴때 엄마는, 이번엔 될 거 같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엄마가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셨나요?

왜 이렇게 안해? 왜 고3같지 않아? 하셨지만 사실 저는 고3때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았어요. 차라리 고2때 놀 거 다 놀아서 그런가봐요.”

 

-이제야 엄마에게 말할 수 있는 과거의 비밀이 있을까요? 아주 소소한 것부터 국가기밀에 해당할 것까지.

사실 저는 재수하는 동안 연애를 했습니다…! 3수능 후 체대 입시 준비를 잠시 했을 때 만난 남자친구였어요. 엄마는 그 친구를 진짜 싫어하셨어요. 여튼, 같이 노량진 재수학원을 다녔고 같이 대학을 가고 싶었습니다. 주말에는 학원 수업이 없으니 쉬고 싶었는데 그 친구가 나오니 주말에도 학원에 나가 자습을 했어요.

저의 경우 연애를 했을 때의 득이 컸습니다. 같이 수업을 들었을 때 수학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그 친구의 해설답지를 다 만들어 주면서 이거 시험 나오겠구나,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를 알게 되었죠. 남에게 설명을 해주려면 내가 더 자세히 알아야 하니까 남을 가르칠 정도로 효과적인 공부법도 터득했습니다. 그 남자친구와는, 수능 얼마 앞두고 싸워서 헤어졌습니다.”

 

-입시를 위해 내가 12년의 계단을 밟아오는 동안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나요?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초2때 경기도에서 강북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리고 중1,2학년은 아버지 회사발령으로 브라질에서 보냈습니다. 그때 국제학교를 다니느라 영어도 처음 시작했구요. 그래서 중학생 때 까지만 해도 부모님께서는 제 공부에 특별한 관심을 쏟지 않으셨습니다. 단순히 칭찬 받는 게 좋아서 저는 시험공부를 했고, 부모님께서도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 후, 뛰어난 학생들과 지내면서 엄마는 제 학업에 더 신경을 쓰셨고, 지원해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해주셨습니다. 대치에서 상담실장을 하시면서 엄마는 다른 애들을 보고 학원을 많이 보내려고 하셨고 아버지는 반대하셔서 두 분이 많이 싸우기도 하셨습니다. (정작 저는 재수학원에서 수업듣고 혼자 자습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 입시에 크게 관여하시진 않았지만 오히려 믿고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서 더 감사했습니다. 특히 재수하는 동안은 제가 가져오는 성적표에 대해서만 짧게 말씀하시고 다른 공부 방법이나 학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던, 한 편으로는 1년 뒤쳐졌다고 할 수 있는 제 기나긴 입시과정에서, 두 분 모두 저를 응원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대학과 학과선택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들려주세요.

저는 막연하게 스카이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고등학교 때부터 해왔습니다. 하지만 제 성적으로는 서울대는 무리라는 것을 느꼈고, 아버지가 연세대 출신이었기에 고려대보다는 연세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 내신이 안 좋아서 고3때는 수시6장을 특기자로만 넣었는데 다 떨어지고 수능폭망으로 정시3장까지 모두 9장을 다 떨어졌어요. 어떻게 9개를 다 떨어지나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모의때는 수학1등급일때도 있었는데 말이죠.

처음부터 연세대학교 생활디자인학과를 목표로 공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재수 후의 수능 성적을 받고 난 후, 담임선생님들과의 면담에서 대강 지원 학교와 과를 정했습니다. 재수학원 담임선생님께서는 가군에 성균관대 사과대/ 나군에는 연세대 아무과나 소신지원/ 다군에는 중앙대 경영을 정해주셨습니다. 불합격을 염두에 두고 높은 과를 찌를까 고민했지만,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과의 면담 후 생활디자인학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계셨고,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만약에 합격했을 때 만족하면서 다닐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과의 고민 끝에 생활디자인학과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고등3년동안 제가 어떻게 해왔는가에 대한 기록이 고등학교에는 있고 재수학원에는 없으니 저의 경우 고등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재수때도 수시지원을 했어요.)”

 

-대합합격소식을 처음 들었던 그 순간! 어떻게 합격을 확인했나요? 기분은? 그 날 한 것은?

사실 정말 기대를 안하고 있었습니다 고3때부터 무수히 떨어져왔던 연세대였던 만큼( 4번 저를 떨어뜨렸습니다….),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루종일 폰만 보며 합격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발표 시간 전부터 수십 번 수험번호를 입력해봤구요. 마침내 합격페이지를 보자마자 울면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엄마와 부둥켜 안은 채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고, 재수학원 담임선생님/3 담임선생님/아버지/할머니, 할아버지 모든 분께 합격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페이스북에서 개인 프로필을 업데이트했습니다. 합격페이지를 캡쳐해서 올렸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선배들이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했음이라는 프로필을 추가하는 것을 보면서 로망을 키워왔습니다!) 사실 성대 먼저 되고 연대 된 거였는데, 내 내신등급에도 연대갔다 너무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합격확인부터 대학입학식 전까지 나는 무엇을 했나요?

“2017년이 되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많이 만났습니다. 재수하는 동안 아무와도 연락도,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졸업 이후 처음 만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빠른 98년생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을 내기 위해 술자리도 거의 매일 가졌습니다.

알바 자리(주말 빵집, dele 학원 선생님 조교)를 알아보기도 하고, 여행할 곳을 찾으며 계획을 세웠던 기억도 납니다.

또한 작곡을 하는 친구 덕분에 뮤직비디오 촬영, 노래 녹음과 같은 처음 해보는 경험도 많이 가졌습니다.

 

-입시 ~ 합격이후 입학전 ~ 입학후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입시 준비를 하는 동안은 쓸데없는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오로지 대학 하나만을 보고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지금으로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땐 오직 입시 걱정뿐 이었습니다. 하루 일과는 평일과 주말 다를 바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노량진 메가스터디에 가서 밤 늦게 돌아오는 것뿐이었고, 식사시간과 식단마저도 거의 매일 같았습니다.(아침: 계란찜. 수능날도) 종강 이후 수능을 친 후에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생활을 했습니다. 책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취해(책을 몽땅 다 버렸습니다!) 오로지 핸드폰과 티비, 컴퓨터에 묻혀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입학 전에는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 하고픈 일들을 리스트(여행하기, 장학금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 벽화그리기 봉사, 악기배우기, 작곡 배워보고 싶다, 밴드 동아리)로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과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과 행사에도 참여하고,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지 두 달 정도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제 학교생활은 그저 알바와 동아리, 과제, 공부로만 가득 차있었습니다. 과 특성상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제들이 많았고, 여행 자금 마련을 위해 시작한 알바들 때문에 피로가 쌓이기도 했습니다. 재수 때의 바쁨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재수 때는 안하면 안되니까 하는 것이고, 지금은 자유시간이 많고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 하고 싶은 일로 바쁘니까 재밌습니다.”

 

-입시 ~ 합격이후 입학전 ~ 입학후 지금까지 우리 엄마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확실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엄마가 자신감이 생기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저희 엄마는 그저 내신 5등급 받는 학생의 엄마였습니다. 외고생의 엄마라는 사실보다 거의 재수가 확정된 학생의 엄마였고, 그래서 더 엄마한테 미안했습니다. 특히 재수를 할 때엔, 대학생이 되었어야 할 나이에 재수를 하고 있는 딸의 엄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요즘 엄마는 모임에도 자주 나가시고 어느 정도 홀가분해지신 것 같습니다. 엄마가 저에게 그러셨어요. 재수에서 끝내줘서 고맙다

 

-학교 가보니, 기대했던 대로인가요? 기대와 실제를 다 얘기해주세요.

제가 기대했던 연세대학교는 학문과 술, 흥으로 뜨거운 곳이었고, 실제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이 놀 때에는 이 친구는 이 흥을 참고 어떻게 공부했을까싶다가도 수업시간에 토론을 하거나 발표를 들으면 역시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팀플을 해도 무임승차가 전혀 없어요. 학생들이 자주 가는 송도포차가 있는데 시험기간에는 진짜 손님이 한 명도 없다가 시험끝나면 다 나옵니다. 할 거 하면서 노는 애들이 이런 애들이구나 싶으면서 정말 멋있습니다.  

다만 몇몇 수업들은 제가 기대했던 대학 수업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 가장 좋았던 것과 그 이유는?

엄마에서 벗어났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것 같진 않지만 잔소리가 전무하고, 밤을 새워도 노터치!

저는 현재 송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많은 학생들의 대학 진학 후의 걱정거리 중 하나가 통금일텐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그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어 좋았습니다. 기숙사에도 통금이 있긴 하지만 새벽 두 시부터 다섯 시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제가 듣고 싶은 과목을 듣고 싶은 시간에 맞춰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새로우면서도 너무 좋았습니다. 무언가를 위해(예컨대 입시) 들어야만 하는 과목이 아니라,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고 들을 여유조차 없었던 학문을 공부할 수 있어서 대학생이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경제학개론을 듣는게 로망이었는데, 마침 저희과는 복수전공시 졸업전시회를 안해도 된다해서 경제를 복수전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공강을 만들어서 시간을 낼 수 있다는 점도 대학생만의 특권인 것 같습니다.(화수목 풀강이고 월금공강이라 금토일월을 쭉 이어서 쉴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시간표를 정말 마음에 들게 짠 덕분에 /금 공강을 얻어냈고, 듣고 싶었던 수업도 모두 수강신청에 성공하여 듣고 있습니다. (수강변경 기간에 잘 주웠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 가장 힘들었던 것과 그 이유는?

모든 것을 제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현실이 몸에 와닿습니다. 장학금도, 수강신청도, 과제도, 기타 대학 관련 활동들 모두 제가 직접 찾아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직접 알려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공지를 직접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무언가를 하고 안하고의 책임이 모두 저에게 달렸다는 점이 고등학생 때와는 확연히 다른 점 같습니다.

해야할 것들은 카톡의 상태메시지에 기록해두거나 나에게 메시지보내기를 해놓고 자주 봅니다. 선생님이 지적하지 않으셔도 스스로 꼼꼼하게 챙깁니다. ”

 

-첫 중간고사를 보고 난 소감은?

일단 장학금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이러려고 대학왔나 공부를 너무 안했다 싶기도 하구요. 기말을 잘 봐야죠.

다른 고교출신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니, 우리 고등학교가 준 게 참 많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보통 일반고의 경우 수행한다고 밤 새우질 않는다는데 저희는 친구들끼리 밤을 새우는게 진짜 많았거든요. 대학 와보니 밤을 새워야 끝낼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저는 고등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듭니다.”

  

-아직 취업은 멀었지만, 취업에 대한 걱정이 있나요? 왜요?

대학생이 된 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부쩍 늘었습니다. 마침 언니의 졸업과 취업을 보면서 힘들겠다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고학년이 될 때까지 과제-수업-알바 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허송세월 할 것만 같았습니다.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해 스스로도 잘 모르겠고,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볼 용기조차 나지를 않습니다. 진학한 과 특성상 취업의 방향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확실한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한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2학년이 되면 생활디자인학과 내에서 세부적인 전공을 정해야 하는데, 그 전에 취업에 관한 계획을 세울 예정입니다.”

 

-원래의 꿈이 뭐였어요? 대학오고 난 이후 그 꿈은 변함이 없나요? 달라졌나요? 이유는?

아주 어렸을 적 꿈은 화가였지만, 부모님은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드니 취미로만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중학교 때의 해외 거주 경험 이후, 국제무역에 관심이 생겨 국제통상가가 되기 위해 외국어와 경제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생활디자인학과에 진학한 지금, 제가 좋아하는 예술 분야를 접목시킨 진로는 없을까 다시 고민 중입니다.”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막연하다는 거?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목표의식이 없어요. 하루하루 해야할 것만 하고 즐겁긴 한데 보람차지는 않습니다.”

 

-지금 고등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가감없이 해주세요.

학생들이 무얼 하든 부모님의 마음에 쏙 들기란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학생들 본인일 테니, 힘들어 하는 상태에서 채찍질만 하지 마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세요. 그게 심적인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아님 학생이 수강하고 싶어하는 학원에 등록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영화 한편 친구들과 보고 올 여유를 주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온 경험자로서 고3 그리고 고2이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저는 머리가 특별히 좋지도 않고, 남다른 끈기를 가지지도 못한 평범한 학생입니다. 그래서 공부만 몇 년 동안 하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고등학교 3년동안 저는 제대로 놀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수 때에는 제대로 놀고, 제대로 공부를 했고 최선의 결과를 얻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공부시간을 칼처럼 갈라놓으라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겠다고 책상에 앉아있지만 핸드폰을 한다거나 잡생각을 한다거나 한다면, 그 시간은 어느 것도 아닌 시간이 되어버립니다.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할 때 온전히 쉰다는 마음으로 쉬고, 공부를 할 땐 몰입해서 공부만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한다면, 후회도 남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입시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한마디 또는 한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제의 나를 이겨서 오늘의 나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선배가 해 준 말인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어제의 나를 이기라는 뜻입니다.”

 

 

 

<인터뷰 후 인터뷰>

-연대에 붙고나서 송도 1년살이를 안 엄마들도 있다는데, 이런 엄마들을 위해 송도라이프를 들려주세요!

일단 기숙사 건물은 가운데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는 형태의 2동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강의실들이 있습니다. 모두 10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예요. 기숙사방은 다른 학교의 기숙사들과 비슷합니다. 건물, 잔디밭은 다 깨끗하고, 크지는 않지만 학교 내에 있을 건 다 있어요. 특히 도서관이 잘 되어 있어서 1시간만 공강이어도 다들 도서관으로 가있습니다. 교내식당은 가격이 싼데 학교밖은 가격이 비싸서 될 수 있으면 학교 안에서 먹구요, 기숙사 관리 학생의 정보로 야식과 배달음식 전화번호를 알아내 많이들 시켜 먹습니다. 놀거리는 신도시라 별로 없어요. 이제 겨우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고 입점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좀더 나가면 해양경찰서가 있는데 거기가 번화가예요.”

 

-연대엔 미대가 없잖아요? 학과소개를 부탁합니다.

생활디자인학과는 생활과학대에 소속이 되어있구요, 문이과통합으로 뽑습니다. 다른 대학의 디자인과에 해당되는 과예요. 2,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기업 제품디자인이나 편집디자인, 광고 등의 계열로 취업을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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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왼쪽은 수학풀이답지

이 노트를 보며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

 

#오른쪽은 모의고사 오답모음집

전과목을 늘 가지고 다니며 볼 수 있게 핸디사이즈로. 해당문제의 개념도 같이 정리

 

#숙녀의 가방을 터는 건 좀 미안했습니다만

고딩때나 대딩때나 변함없는 건 빨간 입술에 대한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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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24개]
늘 모범 답안 같은 수험생들의 합격 후기만 보다가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헤쳐온 학생의
솔직한 후기를 읽고 읽자니 더 맘이 짠하고 대견하고 지금 고딩 2학년인 울집 아이가 오버랩되네요.
꿈과 끼, 흥이 넘칠 나이에 이 모든 걸 참으며 책상 앞에 자신을 묶어두느라 고생하는 울 아이들...
덕분에 조금 더 아이를 이해하는 맘이 생기네요. 어려운 시간을 잘 지나온 만큼 앞으로 더 멋진 나날이
펼쳐지길 응원합니다.^^

엄마와 딸 사이의 애증이 읽혀져서 마음이 따끔따끔합니다. 그래도 합격 장면에서 부둥켜 안고 같이 운 사람은 바로 엄마.... 눈물이 핑도네요. 솔직한 마음 깊은 곳을 보여준 모양 고맙습니다. 재수하는 동안 연락을 자제해 준 친구들도 고맙고, 이제 다시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로 돌아와 함께한 모든 활동을.... 정말 숨가쁘게 읽었어요. 예쁜 모양의 고등과 재수생활 이야기... 두고두고 읽고 싶은 글입니다. 마음이 아리아리하면서서 기쁘고 이쁘고....

현실적인 수기네요. 밝고 건강한 학생의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어제의 나를 이겨서 오늘의 나를 만드는 사람' 이라는 말 저희 아이에게 꼭 전해주고 싶네요.
진솔한 후기 감사합니다.

  • 함께해요맘 학부모
  • 20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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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가 더기대되는 학생입니다. 연재를 읽으면서 느끼는건 정말 우리아이들 고생이 많다 이런아이들 지켜주고싶다 잘되는거보며 살고싶다~~

아~~~맞는말..똑부러지게 적어놓으셨어요. 몇년동안 공부만 하기란 어렵다는말요..
나중에 저희 아들 사춘기 제대로 오면 ..그래!!!놀아라 하고 풀어줘버릴까봐요^^

정성스럽고 솔직한 수기 감사합니다. 성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은 멋진모습~ 응원하겠습니다^^

장하고 짠하고... 넘 감사한 맘으로 읽었습니다. 앞으로 큰 꿈 꾸고 그 꿈 이루길 기원합니다!

정말 멋진 생활을 하셨네요.......항상 엄마라는 역할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공감이 200배 가네요

감동적인 글이네요. 솔직한 후기 올려주신 멋진 여학생에 감사드리고, 이런 코너로 정보를 나눠주시는 디스쿨에도 감사드립니다.

엄마의 역할.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실적인 인터뷰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어요.. 공감!!

  • 희망과사랑 학부모
  • 201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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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재수하는 아들 생각 납니다.

오늘도 열공을 하고 있을 울딸이 생각나네요. 저희 아이도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제일 위로 받고 싶은 사람이지만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독한 말로 다그치는 엄마맘을 울딸도 알아줄까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우리딸이 제게 하던 멘트랑 똑같네요.

열정있는 학생이네요, 중3 딸...진로고민 중인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아이의 지쳐 잠든 얼굴이 떠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지금 고2 여자아이를 둔 엄마인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짜증이 많은 시기라 보여주는 것도 눈치보이고 조심스럽지만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대비도 할겸 꼭 보이고 싶어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